우리가족

옥수수의 아버지

아포얀도 2009. 8. 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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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33% 개발 '옥수수의 아버지' ■ 옥수수 연구 매진 민 황 기 도농업기술원장 "옥수수 낱알 하나 하나 속에 강원 농업의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국내산 옥수수 종자의 33%를 개발·보급한 '옥수수의 아버지' 민황기 도 농업기술원장. 서울 경동고와 서울시립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한 민 원장은 1976년 강원도 농촌진흥청 작물과 연구사로 취직하면서 옥수수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농업 명문교인 오레곤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때가 1978년. 작물학을 전공하며 선진국의 교잡종 육성법을 배워 석사 학위를 취득한 민 원장은 귀국 후 3년 10개월만인 1985년 4월 '슈퍼 옥수수' 개발자인 김순권 박사의 요청으로 또 다시 나이지리아로 떠났다. 나이지리아 오바산조 농장에서 종자생산 책임관으로 일하며 옥수수 연구에 매진한 민 원장은 1992년 귀국해 도 농업기술원 경영연구과장으로 4년 동안 재직하다 마침내 본인의 뜻에 따라 홍천군 두촌면 옥수수시험장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 단위 기관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옥수수 연구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 원장은 "옥수수 밭에서 풍기는 옥수수 내음과 새로운 품종을 육성할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옥수수시험장장을 맡은 민 원장은 신품종 개발에 전념했다. 
연구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는 1999년 두메찰을 시작으로 흑점찰, 미백찰, 미흑찰, 미백 2호, 조미찰, 강일옥 등 
모두 6개의 신품종을 개발했다.
단기간내 신품종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태국, 멕시코 등 열대지방을 이용한 2모작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농가의 미약한 의지와 판로 확보의 어려움으로 옥수수 종자 보급은 곧바로 난관에 부딪쳤다. 
당시 농가에서는 '옥수수 농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며 
밭떼기 거래를 통한 상인들의 횡포가 극심했다. 
그러나 민 원장이 개발한 신품종 옥수수는 첫 해 '수확량 3배 증가, 농가 순소득 90% 증가'라는 대 성공을 거뒀고, 
현재 도내에 보급된 옥수수 종자의 95%이상을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끄는 상품이 됐다. 
1996년 말까지 홍천, 영월 등 도내 1만4300㏊에 130t의 종자가 보급돼 543억원의 농가소득을 올렸다. 
 
특히 2002년에는 종자를 선별해 소독, 포장할 수 있는 시설을 시험장에 갖췄으며 2004년에는 
종자 저온저장시설을 구축해 홍천이 옥수수의 본고장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밭떼기상의 횡포도 근절시켰다. 
홍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든 옥수수를 시험장에서 전량 구매해 상인들의 저가 구입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방지했다. 
민 원장은 "농가로부터 구입한 옥수수를 팔기 위해 도청, 농협, 우체국, 대형마트 등 안 가 본 곳이 없다"며 
"홍천 찰옥수수의 명성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참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홍천 옥수수는 43% 가량이 대도시 유통업체와 직거래되고 있을 만큼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대단위 옥수수 생산기반 확충을 위해 구성한 작목반도 2001년 36개농가 10㏊에서 2005년 220개 농가 100㏊로 늘었다. 
민 원장은 지난 2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홍천군 명예군민으로 선정됐다.  
민 원장은 "국내산 옥수수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만억제, 이뇨작용 활성화 등 
기능성이 강조돼야 한다"며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옥수수 신품종 육성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원 gondori@kado.net
기사입력일 : 2007-06-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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